자동차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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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의 기능에 대해서는 조선 말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도 천문대(天文臺), 즉 천문관측을 하는 곳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 갑자기 이에 대한 이설이 제기되며, 제단(祭壇)·기념물·불교관계 건축물 등의 여러 가지 설과 이견이 속출되었습니다. 이런 설에 대하여 종전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천문대로 해석하는 연구도 물론 진행되었습니다. 이 설들이 나온 이유의 하나는 현존하는 첨성대가 평지(平地)에 있다는 것, 첨성대 자체의 구조상 그 위로 오르내리는 통로가 매우 불편하다는 점 등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환경은 나라마다 다른 첨성대 또는 점성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구조는 아래의 기단부(基壇部), 그 위의 술병형의 원통부(圓筒部), 다시 그 위의 정자석(井字石) 정상부(頂上部)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땅속에는 잡석(雜石)과 목침(木枕) 크기의 받침돌, 그리고 기단부 서쪽으로는 일렬로 자연석이 놓여 있습니다. 이 기초를 다진 돌 위에 2단으로 된 기단석이 놓여 있습니다.